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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생각

음악은 어떻게
우리의 감정을 사로잡는가?

섬세한 선율이 우리의 마음을 다정하게 안아 줄 때 그 순간 우리의 감정은 쉽게 형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누구에게나 가닿는 음악에는 진실한 힘이 있는데, 그것은 ‘감정’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writing. 오희숙(음악학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감정, 음악 탄생 근원의 핵심

누구나 한 번쯤 음악을 듣고 큰 감동을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18세기 바로크 시대 작곡가 비탈리의 <샤콘느>에 대한 청중의 반응이 유독 눈에 띈다. ‘이 곡을 듣다 보면 슬픔에 사로 잡힌다’, ‘곡을 듣는 도중 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곡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라는 별칭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이뿐 아니라,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Gould)는 15살의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바그너(Richard Wagner)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듣고 ‘그냥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하였고, 철학자 니체(Friedrich W. Nietzsche)는 ‘영혼의 모든 날개가 경련하며 펼쳐져서 숨을 멈추지 못하는’ 음악적 경험을 철학서에 피력하기도 하였다. 음악은 이처럼 우리를 슬프게 하고 때로 눈물까지 흘리게 한다. 음악은 어떻게 우리의 감정을 사로잡는 것일까?
이는 무엇보다도 음악과 감정의 밀접한 관계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솟아오르는 감정이 가끔은 너무나 엄청나고 거대해서’ 그것을 담기 위해 예술이 탄생했고, 그중에서도 음악이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최고의 예술이라고 했던 낭만주의 문학가 박켄로더(Wilhelm Heinrich Wackenroder)의 말처럼, 음악의 탄생 근원에는 감정이 핵심적으로 작용하였다. 작곡가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느끼는 기쁨과 좌절, 희망, 분노 그리고 슬픔을 작품에 표현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통해 청자는 감정적 동요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즉 음악은 감정을 ‘표출’-‘함축’-‘환기’시키는 예술이다.

감정의 예술로서 음악의 힘은 오르페우스 신화로 거슬러 올라가 발견된다. 사랑하는 연인 에우리디체를 잃은 오르페우스가 연주하는 음악에는 얼마나 슬픈 감정이 담겼던지 요정들의 눈물은 강이 되었고, 주위의 나무들도 다 시들어 버렸을 정도였다. 죽은 망령들까지 눈물을 흘렸고, 탄탈로스는 목이 마르는데도 잠시 물을 마시지 않았으며, 익시온스의 딸들은 물 푸는 일을 중지했다. 그런데 한가지 더 주목할 점은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체를 찾아 지옥까지 가서, 그의 아름다운 음악 연주로 지옥의 신 마음을 돌려놓았다는 것이다. 그의 연주에 감동을 받은 하데스에게서 에우리디체를 구한 오르페우스 신화는 ‘음악의 마술적인 신비의 힘’을 대변하는 정형이 되었다.

음악이 주는 영혼의 치유

일찍이 고대 철학자들도 음악과 감정의 관계에 주목했다. 피타고라스가 인간의 영혼에 미치는 감정적 정화작용을 강조하였고, 플라톤은 음악의 감정적 영향력이 도덕적· 윤리적으로 작용한다는 에토스론을 펼쳤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제적으로 청자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영향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주목할 만한 지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 미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의 실제적 내용을 ‘인간의 감정과 성격’으로 보면서 모방을 통한 예술이 감각적인 즐거움을 준다는 사실을 강조하였고, 이 과정에서 예술이 주는 감정적인 정화작용을 ‘카타르시스’로 설명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는 감상자가 일상 세계에서 느끼는 고통스러운 감정인 연민과 공포가 예술작품을 통해 인위적으로 자극되면서, 이러한 감정에서 해방되어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실제 경험 세계에서 연민과 공포의 감정은 일종의 고통이지만, 예술작품을 통해 이러한 감정이 분출되고 배설되면서 일시적으로나마 이 감정들로부터 해방되어 영혼이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음악에 연결해 보면,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모방적으로 표현하면서 억압된 감정을 표출시키게 한다. ‘슬플 때는 더 슬픈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슬픈 음악을 경험하면서 우리 내부에 있는 슬픔의 감정이 자극되고 그것이 표출되면서 정화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우리는 슬픔에서 해방된 예술적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청중에게 전하는 감정과 열정의 언어

이후 음악과 감정의 관계는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절정을 이루게 된다. 인간의 감정은 ‘우수에 가득 찬, 반은 달콤하고 반은 고통스러운’ 추상적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으로 이해되었고, 음악은 이러한 인간의 가장 깊고 비밀스러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예술로 등극하였다. 감정만이 ‘무한성’의 문을 열어 주고, ‘초월성’을 예감하게 할 수 있으며, ‘밤’이나 ‘꿈’, ‘죽음’ 과 같이 현실과 대립을 이루는 세계, 개념적 경험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예감’, ‘그리움’, ‘사랑’을 나타낼 수 있다고 보았다. 음악은 이성을 초월한 신비한 세계를 구현하는 예술로 이해된 것이다.
바로 이 측면에서 음악은 형이상학적 위엄을 부여받게 되었다. 음악의 위상이 이제 철학과 같은 위치로 상승한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점을 명확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 ‘음악은 자기가 철학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 정신의 숨겨진 형이상학의 연습이다’ 라고 말한 쇼펜하우어는 음악이 자신의 철학의 핵심인 ‘의지’의 세계를 구현하는 예술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의지의 모방’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은 음악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감정’을 제시하였다. 그에게 음악은 언제나 ‘감정과 열정의 언어’ 이며, 음악에서 우리는 모든 의지의 현상, 그리움, 충동 등을 파악하고 표현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음악이 청중에게 강한 감정적 영향력과 효과를 행사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음악은 의지와의 직접적 관계를 통해서 다른 예술보다 훨씬 강렬하게 작용하여 최고의 감동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각각의 예술이 속한 이념의 객체화 단계가 높으면 높을수록, 인간의 감정에 즉각적이고 강한 작용을 한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은 세계의 그림자가 아니라 본질을 표현하므로 다른 예술보다 훨씬 빠르고 강렬하게 작용하여 최고의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즉 음악이 주는 인상과 효과는 고유하고 강력하다. 그래서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음악은 누구에게나 곧 이해되고’, 다른 예술에 비해 ‘더 강하고 더 빠르고 더 필연적이고 더 확실’한 것이다. 이러한 측면 역시 음악과 다른 예술을 구별하는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음악과 감정의 긴밀한 관계는 중심점과 접근 방식이 달라
졌지만, 여전히 음악을 이해하는 핵심적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감정은 구체적일 수
도 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고, 인지될 수도 있고, 환기될 수도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음악적 감정이 우리의 내면 깊숙이 파고 들어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음악과 감정의 긴밀한 관계

20세기 이후 현대에도 감정은 음악을 설명하는 강력한 논리로 자리 잡았다. 철학자 키비(Peter Kivy)는 음악을 듣고 우리가 슬픈 감정을 느낄 경우, 음악이 우리를 슬프게 하기 때문에 슬픈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음악에 표현되어 있는 슬픔을 인지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 제2악장 ‘장송행진곡’>을 듣고 우리가 슬프다고 느끼는 것은, 이 곡에 표현된 속성이 ‘슬픔’ 이라는 감정이기 때문이지 “그것이 우리를 슬픔이라는 주된 감정으로 데려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철학자 로빈슨(Jennifer Robinson)은 ‘음악은 한숨짓거나 울부짖을 수 있고, 냉담하게 굳어 버리거나 야단법석 칠 수 있다. 음악은 위협적으로 몰래 다가설 수 있고, 성난 듯이 활보할 수도 있다’며 음악의 감정적 환기를 강조하였다. 음악이 특정한 감정을 표현하고 환기할 뿐만 아니라, 행복과 불행, 고통과 번민 같은 고차원적인 감정도 환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음악과 감정의 긴밀한 관계는 중심점과 접근 방식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음악을 이해하는 핵심적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감정은 구체적일 수도 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고, 인지될 수도 있고, 환기될 수도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음악적 감정이 우리의 내면 깊숙이 파고 들어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오늘 저녁에는 비탈리의 <샤콘느>를 들으면서 음악이 구현하는 슬픔의 세계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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