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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시대를
읽어라

풍속화 및 장르화에는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요소가 있으며 때로는 현실 고발과 비판 정신도 담겨 있다.
신윤복과 페르메이르가 그린 작품들을 통해 당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의 생활상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writing. 박혜성 (화가, 작가)

  • Johannes Vermeer

    미인에 대한 호감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미인이 베일에 가려진 경우 호기심까지 가세한다.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유명한 이유는 모델에 대한 비밀스러운 이야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8년 가을 서울 간송미술관과 2014년 뉴욕 프릭 컬렉션(Frick Collection) 특별전은 그림 속 미인을 보려는 인파로 뜨거웠다. 바로 조선 후기 화가 신윤복(申潤福, 1758~1814경)의 <미인도>와 네덜란드 화가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전시되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두 그림에는 공통점이 있다. 화가가 베일에 가려졌다는 점과 여성의 일상을 주로 그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했다.

  • Shin Yun-bok

    신윤복은 풍속화가로 화려한 색과 섬세한 표현이 특징이며 남녀의 사랑놀이나 여성의 풍속을 주로 그렸다. 페르메이르 역시 여성의 연애 감정이나 일상을 담은 장르화를 매혹적으로 그렸다. 장르화는 서민의 일상생활과 풍속을 묘사한 그림으로 당대의 역사, 문화, 생활, 미의식 등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 유럽의 장르화는 우리나라 풍속화와 유사한 개념인데 페르메이르가 그린 다수의 작품이 장르화에 속한다.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요소가 있는 풍속화 및 장르화에는 때로 현실 고발과 비판 정신이 담긴다. 두 화가가 그린 작품들은 당시 사회 풍습과 유행 그리고 잘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의 생활상이 녹아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신윤복 <단오풍정>, 간송미술관

금기에 도전한 신윤복

혜원 신윤복은 김홍도와 쌍벽을 이루는 조선 후기 풍속화가이다. 백성의 일상과 남자들의 노동 현장을 주로 그린 화가가 김홍도라면 양반과 기녀, 여성의 일상을 섬세하게 그린 화가는 신윤복이다. 김홍도의 <씨름>과 신윤복의 <단오풍정>이 두 화가의 특징을 잘 설명해 주는 대표작이다. 그런데 신윤복의 <단오풍정>은 ‘19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노출이 심하다. 여기저기 드러난 가슴이 한둘이 아니다. 유교 시대에 살았던 여성들이 어떻게 가슴을 드러내고 냇가에서 목욕을 한단 말인가?
이 그림은 음력 5월 5일, 양력 6월 초 즈음에 행하는 단오절 풍습을 담고 있다. 모내기를 마친 후 마을 잔치를 하고, 다가올 더위에 건강을 기원하는 축제이다. 남성은 씨름을 한판 벌이고 여성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 타기를 하였다. 노랑 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고 한껏 멋을 부린 여인과 트레머리를 매만지는 여인들, 냇가에서 몸을 씻는 여인들은 여염집 규수는 아니고 산속으로 나들이 나온 기녀들로 추측된다. 아무리 기녀라 할지라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여성의 신체를 노출한 화가는 신윤복이 처음이었다. 이 풍속화로 미루어 보아 조선 후기는 우리의 생각만큼 보수적이거나 엄격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짐작게 한다.

신윤복 <월하정인>, 간송미술관
옷소매 붉은 끝동, 조선 시대 로맨스

신윤복의 자유분방한 여성 풍속화는 지금 봐도 놀랍다. 당시 그의 풍속화는 화원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도화서에서 추방되었다는 소문이 있다. 신윤복은 도화서에서 그림을 그리는 직업 화가인 화원이었으나 조선왕조실록에 기록이 전혀 없는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다. 그의 이름이 등재되지 않은 이유가 양반들의 유흥과 노골적인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가 아니겠느냐고 추정만 할 뿐이다. 신윤복의 <월하정인>을 보자. 여인의 붉은 소매 끝동과 신발은 이 그림의 압권이다. 은은한 바탕에 붉은색은 시선을 사로잡는다. 달빛 아래 옥색 치마와 쓰개치마를 쓴 여인은 젊은 양반과 밀회 중이다. 여인은 수줍은 듯 머뭇거리는데 남자의 발은 길을 재촉한다. 정조와 궁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이 인기리에 종영했다. 소매 끝동이 붉은색인 것은 삼회장저고리를 지칭하는 것이다. 삼회장저고리는 조선 시대 최고급 저고리로 깃과 고름, 소매 끝동, 겨드랑이 밑 곁마기를 각각 다른 색깔로 만들었다. <월하정인>이 매력적인 이유는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부감법으로 그렸기에 몰래 본다는 느낌이 고조된다는 점이다. 신윤복은 색은 최대한 절제하면서 몇 군데 포인트를 주어 남녀의 은밀한 연애를 멋들어지게 표현하였다. 이 작품은 국보 135호로 지정되었다.

신윤복 <미인도>, 간송미술관
우리나라 최고의 여성 초상화 <미인도>

신윤복의 그림을 주목하는 이유는 조선 시대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예가 없기 때문이다. 조선 유교 사회는 남녀 관계가 엄격한 가부장적 사회였기에 여성이 그려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저잣거리의 소박한 여인들, 양반을 상대로 유흥을 제공하는 기녀들, 생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파격적인 소재였는데, 신윤복은 그녀들의 의복과 장신구 등을 상세히 묘사하며 기록보다 더 값진 정보를 제공한다. <미인도>를 살펴보자. 삼작노리개를 만지작거리는 이 여인은 누구일까? 잘 차려입은 의복과 차림새로 보아 기녀로 보인다. 당시 기녀들은 여성의 패션을 이끌었다고 한다. 큼지막한 트레머리와 꽉 끼는 저고리에 부풀어 오른 치마는 조선 후기 크게 유행한 스타일이었다. 그림 속 여인은 조선 시대 이상적인 미인상으로 둥근 얼굴과 작은 입술, 초승달 같은 눈썹과 쌍꺼풀 없는 갸름한 눈이다. 다소곳한 모습은 단아해 보이고 치마 사이로 살짝 보이는 버선발이 은근히 관능적이다. 화면을 가득 채운 여인상은 신윤복이 처음 시도한 것이며 후에 이를 모방한 미인도가 여러 점 그려진다.
신윤복은 뛰어난 실력과 업적에도 불구하고 기록이 미미한 화가였다. 파격적이며 도전적인 그의 풍속화는 당시에는 외면 받았지만, 오늘날 조선 시대의 단면을 보여 주는 귀한 국보가 되었다.

페르메이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북구의 모나리자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17세기 네덜란드 델프트(Delft), 페르메이르는 빛이 잘 드는 창가에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완성한다. 살짝 벌어진 붉은 입술과 전면을 응시하는 눈망울은 더없이 매혹적이며 푸른 터번과 노란색 상의는 색의 대비를 이루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여성 초상화이다. 이 작품은 페르메이르의 대표작인데, 앞서 언급한 신윤복처럼 그의 생애와 작품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어 베일에 가려진 화가이다. 페르메이르의 아버지는 여관을 운영하면서 미술품을 거래하는 화상이었으며 부친 사망 후 이를 상속받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20살의 페르메이르는 한 살 연상인 카타리나 볼네스와 결혼한다. 하지만 그는 8명의 아이를 두고 43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페르메이르 사후 그의 아내는 생활고를 겪으며, 남편의 그림을 헐값에 팔아 버렸고 작품은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페르메이르에 관한 기록은 약간의 공증 증서와 법률 문서가 전부이고 작품에 관한 기록과 정보는 없었다.
1675년 페르메이르가 세상을 떠난 뒤 그는 오랜 시간 잊힌 화가였다. 그런데 1866년 프랑스 미술사학자 빌렘 뷔르거의 논문이 발표되면서 세상은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주목하게 되었다. 그의 대표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북구의 모나리자로 불리며 재평가되었고 현재 페르메이르의 몇 안 되는 작품은 미술관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페르메이르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
알테 마이스터 회화관
사랑의 큐피드는 왜 지워졌을까?

페르메이르는 햇살 비치는 창가에서 편지를 읽거나 쓰는 여인들을 종종 그렸다. 최근 화제가 된 독일 드레스덴 알테 마이스터 회화관 소장품인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을 보자. 이 작품은 벽 뒤에 감추어진 큐피드를 복원함으로 새롭게 조명되었다. 1979년 엑스레이 촬영 결과 그림 속 뒷벽에 큐피드가 그려져 있었고, 2021년 8월 알테 마이스터 국립회화관은 지워진 큐피드를 복원하여 360여 년 만에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 네덜란드 회화에서 편지는 일반적으로 사랑을 의미하지만, 당시 연애편지는 매우 조심스러운 소재였다. 특히 편지를 읽는 여인이 결혼한 유부녀인 경우 편지는 불륜의 증거가 되었다. 부르주아 가정의 여성은 글을 알았는데 그녀들은 편지로 은밀한 감정을 전하곤 했다. 17세기 법 논문에 의하면 유부녀가 외간 남자와 편지를 주고받는 것은 간통으로 간주했다. 편지가 간통의 증거가 될 수 있다니 혹시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의 큐피드가 지워진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닌지 더 궁금증이 생긴다.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에서 몇 가지 상징을 찾아볼까? 왼쪽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은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이다. 페르시아 양탄자는 부의 상징이며 그 위에 놓인 기울어진 과일 그릇은 혼외 관계를 의미한다. 편지를 읽는 여인은 이미 사랑에 빠졌다고 추정할 수 있으며 유리창에 비친 여인의 얼굴은 마음이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페르메이르 <저울질하는 여인>,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진주는 허영일까, 정결한 여인의 덕일까?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소장품인 <저울질하는 여인>에서 진주는 어떤 의미일까? 진주는 정결한 여인의 덕이라는 긍정의 의미와 허영과 사치 그리고 바니타스(Vanitas, 공허, 헛됨)를 경고하는 부정적 의미, 즉 양가적 의미로 해석한다. 사실 페르메이르가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은 충동적인 욕망을 경계하며 혼인의 신성한 의무를 지키라고 하는 도덕적 경고를 보내는 것이다.
페르메이르는 양가감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여인을 다수 그렸지만, 사회 규범의 모범을 제시한 그림도 그렸다. <우유를 따르는 여인>, <레이스를 뜨는 여인> 등이 그런 작품이다. 우유를 따르는 일과 레이스를 짜는 행위는 여성 고유의 정숙한 일이었다. 근면하고 성실한 여인의 태도는 존중받아야 할 고귀한 가치이다. 페르메이르는 여성을 주제로 한 실내 장르화를 가장 많이 그렸고 종교화 2점, 신화 1점, 풍경화 2점 등을 그렸는데 총 36점이 전해지고 있다. 그가 남긴 작품의 수는 많지 않고 크기 또한 매우 작지만,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 없는 섬세한 기법으로 공간과 빛을 연출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의 작품은 여전히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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