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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글人

빙상을 가르는
열정의 아이콘

초등학생 시절, 쇼트트랙 선수로 활동하며 각종 메달을 휩쓴 김형기 대리는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열정과 도전 정신이 살아나는 기분이라고 한다. 운동선수 출신답게 다양한 운동으로 탄탄한 체력을 키워 온 그는 지치지 않는 끈기와 열의로 새로운 도전을 거듭하고 있다. *<with IBK> 2월호의 모든 촬영은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하여 진행했습니다.

writing. 백미희 photograph. 김범기

프로세스혁신부
김형기 대리
내 인생의 가장 독특한 이력, 쇼트트랙

스케이트 날로 얼음을 가르는 소리에서 속도감이 느껴진다. 아이스링크장의 끝과 끝을 순식간에 이동하며 코너를 돌 때는 자연스럽게 선수처럼 무릎을 굽히는 자세가 나온다. 하지만 오랜만에 신은 스케이트화가 어색한지 주춤거리기도 하고 코너링을 할 때는 몸이 마음처럼 되지 않아 균형을 잃기도 한다.
아이스링크장을 질주하고 있는 주인공은 프로세스혁신부의 김형기 대리로, 그에게는 ‘쇼트트랙 선수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초등학생 때인 20여 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지금도 이 시절의 기억은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이것저것 많이 접해 봤어요. 어머니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거든요. 쇼트트랙은 YMCA 수영부 선생님이 권유해 주셔서 시작한 것 같아요. 사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는데 제가 스케이트화를 신자마자 혼자 균형을 잡고 타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렵지 않게 시작한 만큼 금방 흥미를 느끼게 되었던 거죠.”

그는 또래에 비해 재능을 보이는 덕분에 취미반이 아닌 선수반에서 쇼트트랙 선수로 훈련을 받게 되었다. 스케이트를 탄 지 6개월 만에 전국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다고 하니 누가 보더라도 눈에 띄는 재능이었으리라. 당시 선수반의 초등학생은 김형기 대리 한 명뿐이었다. 다들 선수들은 모두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었다. 그는 한참이나 큰 형들과 함께 훈련일정을 소화했다.
초등학생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정이었지만 전국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우수한 성적을 거둔 덕분에 힘든지도 몰랐다고.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 때까지 선수 생활을 하기는 했지만 그가 쇼트트랙에만 ‘올인’한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그가 다양한 경험을 해 보기를 원하셨고, 5학년 때부터는 자연스레 탁구에 빠져들었다.
쇼트트랙 선수 생활을 할 만큼 운동센스가 남달랐던 그는 탁구에도 쉽게 적응했다. 학교 운동부에서 열심히 활동했고, 6학년 때는 전국대회까지 출전했다.

“소년체전이라고 전국대회가 있는데, 시도별로 탁구하는 아이들이 모두 모여서 실력을 겨뤄요. 그러면 1등부터 6등까지 자기 지역의 대표가 되는 거예요. 저는 ‘서울시’ 타이틀을 걸고 경기에 참여했어요. 두 달 정도 합숙을 하고 경기를 하러 제주도로 내려갔는데 쇼트트랙 선수 생활만큼이나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죠.”

선수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피어오르는 열정의 씨앗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4년마다 한 번씩 선수로 활동했던 시기가 떠오른다고 한다. 동계올림픽 기간이 돌아오면 미디어에서 쇼트트랙이 크게 주목받기 때문이다. 특히 2006년 토리노올림픽 때는 함께 훈련하던 선수들이 직접 경기하는 모습을 봐서 감회가 새로웠다고.

“당시에 제가 많이 어려서 형들이 가끔 목말을 태워 주곤 했거든요. 그랬던 선수들이 경기를 치르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그리고 저희가 쇼트트랙 연습을 하고 있을 때 링크장 가운데에서 피겨를 연습하던 여자아이가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분이 김연아 선수였더라고요. ‘내가 저런 세계에 속해 있었다’고 생각하면 신기하죠.”

비록 초등학생 때지만 그는 선수 시절을 떠올리면 열정과 도전 정신이 살아난다고 한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그는 매일 새벽 5시 30분부터 8시까지 아침 운동을 하고 학교에 가 수업을 받았다. 하교 이후에는 4시부터 오후 훈련이 시작되었다. 훈련은 밤 10시까지 이어졌다.하지만 운동이 너무 재미있어서 당시에는 힘든 줄도 몰랐단다.

“방학이 되면 전지훈련도 다녔어요. 강릉이나 전주에 가서 체력훈련을 하고는 했죠. 아무리 어려도 선수생활을 했으니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훈련했어요. 그래서 당시를 떠올리면 의욕이 충만해지고는 해요. 현재를 더 충실히 살고 업무에도 열정을 불태우고 싶은 마음이 든달까요(웃음)?”

독특한 이력 덕분에 어딜 가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운동선수 출신인 만큼 그를 볼 때마다 ‘체력이 강하고 도전 정신도 있을 것’
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도 따라왔다. 실제로도 비슷하다.
그는 지금도 운동을 통해 체력 관리를 하고 있다.
직장생활의 체력, 운동에서 온다

독특한 이력 덕분에 어딜 가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운동선수 출신인 만큼 그를 볼 때마다 ‘체력이 강하고 도전 정신도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도 따라왔다. 실제로도 비슷하다. 그는 지금도 운동을 통해 체력 관리를 하고 있다. 탁구는 꾸준히 치고 있는데, 재작년에는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서 2등을 수상했다는 걸 보니 실력이 아직 죽지 않은 듯하다.

“사실 중·고등학교 때는 여느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공부하느라 정신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운동에 대해서는 잠시 잊고 있었어요. 그런데 군대에 가면 탁구를 하게 되거든요. 그렇게 다시 시작하고 보니 푹 빠져들었어요. 사실 쇼트트랙은 독특한 이력이지만 일상적으로 즐기기는 힘든 운동이잖아요. 그런데 탁구는 일상에서 즐기기가 참 좋아요. 어렸을 때 여러 가지를 배워 두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탁구는 아버지도 좋아해서 종종 가족과 함께 즐기기도 하고, 주말에는 아버지의 동호회 활동에 따라가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기도 한다는 김형기 대리. 사내에서는 축구동호회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고, 요즘에는 친구들과 비대면 마라톤을 즐기는 데 푹 빠져 있다. 원래도 종종 달리기를 즐기고 시즌마다 마라톤에도 참가하고는 했는데 팬데믹 이후로는 비대면 마라톤으로 방식을 바꾸었다. 친구들과 함께 한 달에 60km씩 목표량을 정해 놓고 1km가 부족할 때마다 벌금을 걷고 있다고.

“처음 마스크를 쓰고 달릴 때는 숨 쉬기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적응이 된 것 같아요. 운동이 체력관리에도 좋지만, 사람을 사귀는 데도 큰 도움이 되거든요. 하지만 요즘 같은 때는 함께 운동하기가 힘들잖아요. 그래도 탁구나 달리기 등은 상황이 괜찮은 것 같아요. 탁구는 마스크를 쓰고 하고, 마라톤은 혼자 달리지만 앱으로 기록을 공유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즐기고 있습니다. 조금 답답하지만 그 안에서 방법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오늘처럼 얼음판을 시원시원하게 가르며 스케이트를 타 본 것은 근 20여 년 만의 일이다.

“선수생활 할 때처럼 스케이트를 타려면 대관을 해야 해요. 평소에는 스케이트를 타도 사람들 사이를 피해 가면서 타야 하니까 예전과는 완전 다르죠. 실은 금방 적응해서 선수 시절에 탔던 것처럼 빠르게 달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때와는 아주 다르네요. 그래도 너무 즐거웠어요.”

남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경험들. 김형기 대리가 가진 열정의 근원에는 치열하게 선수 생활을 했던 초등학교 시절이 있었다. 특히나 새로운 업무를 담당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그에게 오늘 하루는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

“제가 무역학과를 나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부서에서 IT정보화 사업을 맡아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문과 출신인 저에게 IT 업무는 꽤 어려운 영역에 속해요. 게다가 IT정보화 사업은 IBK기업은행의 미래를 위해서 중요도가 높은 사업이죠. 그만큼 부담감도 커요. 컴퓨터 용어에서부터 IT 관련 유튜브도 찾아보고 사이버 연수도 찾아 듣는 등 잘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운동을 통해 다져 놓은 탄탄한 체력에 멈출 줄 모르는 도전 정신이 결합한다면 못 해낼 것이 무엇이 있으랴. 열정으로 무장해 새로운 업무를 소화하고 있는 그가 멋진 결과를 선보일 날이 머지않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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