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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포중앙지점 천정하 팀장

    지금을 내일의 글로 담아내다

    • 임산하
    • 사진 김범기
  • 지금에 충실한 사람만이 어제에 떳떳하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한 자신에게서 삶의 지혜를 발견하기도 한다. IBK기업은행 마포중앙지점 천정하 팀장에게 ‘어제’는 교훈이다. 그는 시련 속에서 성장한 자신의 ‘어제’를 글로 남겨 두며 ‘지금’의 자신을 독려한다. * <with IBK> 10월호에 관련된 모든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하여 진행하였습니다.
과거에서 선물을 발견하는 그의 진실된 글쓰기

과연 시간이란 단순하게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경험을 주고, 경험은 내공을 쌓게 한다. ‘내공’이라는 단어를 거울에 비춘다면, 거울 속에는 마포중앙지점의 천정하 팀장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그에게는 소소하지만 진심을 울리는 습관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에세이 쓰기다. 어릴 때부터 글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그는 ‘글’과는 조금 떨어진 길을 걷는 동안에도 변함없이 쓰고 또 썼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노트를 간직하고 있는 천정하 팀장에게 공통된 ‘글의 소재’는, ‘과거’이다. 시간이 지나면 맹렬하던 파도는 잔잔해지고, 어느새 한 걸음을 내디딘 나 자신이 보이기 마련이다. 시간이 주는 거리 두기 효과는 대단하다. 그때의 ‘나’에게 그 순간의 고통은 되레 선물이었을 수도 있다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쓴다. 잊지 않기 위해, 나의 성장을 기억하기 위해, 지금의 행복을 새기기 위해.
실제 10년 전에 쓴 그의 에세이 ‘가족 사연’은 당시에도 5년이 지난 일화를 쓴 것이었다. “좋은 결실을 맺은 때에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어려움을 지나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더욱 단단해진 우리 가족을 보며 아픔 속에서도 행복을 찾고자 했던 당시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문득 시간이 지난 뒤에 글을 쓰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싶지만, 그는 모든 것이 생생하다고 말한다. 매 순간 진심을 다해 최선의 삶을 사는 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책을 통한 ‘긍정의 모방’으로 현재를 점검하다

천정하 팀장은 글뿐 아니라 책을 읽을 때에도 진심을 담는다. 스스로를 다독가가 아니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책을 통해 삶을 배우고자 하는 그에게는 애서가의 면모가 보인다. 삶은 ‘양(量)’으로 판가름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질(質)’이 ‘양’을 앞선다.
“삶을 살다 보면 그때그때마다 집중하는 것들에 변화가 찾아옵니다. 때로는 자녀교육에 관심을 쏟게 되고, 때로는 직장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책은 은사처럼 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는 책을 통해 ‘모방’한다고 말한다. 자신보다 먼저 경험한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자신을 되돌아보고 점검하는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그를 바로잡게 하는 것도 책이다. 이는 ‘긍정의 모방’이다. 매일 같이 똑바로 걸어갈 수는 없어도 비뚤게 걸어가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의 태도가 독서 습관에서도 엿보인다.
특히 마음에 와닿는 책의 구절을 따로 메모해 간직하는 것은 그만의 독법이다. 글을 통해 지난날을 회상하고, 책을 통해 내일을 배우는 그에게는 삶에 있어서도 고수의 면모가 보인다.

삶과 글을 사랑하는 그의 다정한 오늘

2007년 겪었던 가족 내 일화를 담은 ‘가족 사연’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도 그의 독법과 닮아 있다. 천정하 팀장은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군더더기 없이 날것 그대로의 본인 감정을 그대로 적어 비슷한 상황을 겪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게다가 지나서 떠올려 보면 그 안에 숨 쉬고 있던 진짜 ‘사랑’과 ‘웃음’이 보이기 마련이다. 과연 ‘가족 사연’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결국은 삶 속에서 지혜를 건져 냈다는 것. 그리고 이를 다른 이들과 공유한다는 것.
작품에 담긴 그의 마음이 생생히 전해져 금세 다른 에세이를 기대하게 된다. ‘가족 사연’에 이어 다른 작품을 준비하는 것은 없을까.
“둘째 아이가 성인이 되면 그때쯤 되어 지금에 대해 쓰고 싶습니다.”라며 진중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그다. “어렵게 지나온 일이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저 스스로 그때 그 순간에 엄청난 집중을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이 시간에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나아가려 합니다. 글을 쓰는 것은 그 다음입니다. 거부하며 집중하는 것은 제자리 뛰기일 뿐이니까요.” 삶과 글을 사랑하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오늘의 집중이 내일은 어떤 작품 속에 녹아들지 기대된다.

다음은 천정하 팀장의 에세이 ‘가족 사연’ 전문이다.

사랑만 한 명약은 없다

2007년 2월은 유독 새파란 하늘이 연일 이어지던 때였습니다. 당시 맞벌이로 인해 시댁에 들어가 살던 저는 큰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분양받은 아파트 입주로 분가를 하게 되었는데, 시부모님은 큰아이 작은아이를 키우는 동안 정이 흠뻑 들어 손주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썩 달갑지 않으셨나 봅니다.
그리하여 평일은 저희 집에서 거주하시며 아이들을 돌봐주시고, 뒷바라지를 해 주셨습니다.
어려운 일이셨을 텐데도 시부모님 덕택에 저는 마음 편하게 직장일과 집안일을 병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날의 날씨처럼 청명한 기운이 우리를 계속해서 감싸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잠시였습니다. 한두 달쯤 뒤 주말에 본가에서 주무시던 시아버님에게 한쪽 다리에 감각이 없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저를 그대로 굳게 했습니다. 남편이 부랴부랴 병원으로 모셨지만 아버님은 그곳에서 뇌경색 진단을 받고 말았습니다. 저의 두려움만큼이나 아버님의 뇌경색 증상은 빠른 속도로 퍼져 가족을 못 알아볼 정도로 심각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결단력 있는 남편이 아버님의 손을 맞잡았고, 지속적인 치료 덕에 아버님은 50~60대보다도 쾌유가 빨라 그 이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지셨습니다.
하지만 명석하고 총기가 대단하시던 분이 뇌의 일정 부분에 손상을 입어 조금은 불편해지셨죠.

아버님은 당신이 본인 마음대로 하지 못하시니 가끔씩 우울증을 겪으시곤 했습니다. 옆에 계시는 시어머님도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야근을 하고 퇴근 때마다 항상 청취하던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3김퀴즈 코너에서 이미자의 노래 동백 아가씨가 흘러나오는 겁니다. 평소 트로트를 따라 부르긴 했지만 가사가 마음 깊은 데까지 전율을 느끼게 하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너무나 애절하게 가슴에 와닿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순간, “맞다!” 하는 생각이 번뜩 스쳤습니다. 아버님은 평소 트로트를 즐겨 들으셨는데, 병색을 띤 뒤로는 전혀 듣지 않고 계셨거든요. 저는 그 야밤에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운전대를 잡고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며 가사를 온몸에 새기다시피 연습했습니다.

집에 도착한 저는 용기를 내어 초등학생 아들과 유치원생 딸과 함께 부모님을 거실로 나와 보시라고 했지요. 아버님을 위해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연습해서 왔다고 말했지만, 한기가 스친 듯이 가라앉아 있던 집안 분위기에 아버님 어머님은 표정변화 없이 무덤덤했습니다.
막상 거실 한가운데 서서 부르려니 쑥스러웠지만 당당히 선포했던 용기를 떠올리며 열심히 불렀습니다. 노래를 마치자 아버님과 어머님이 진지하게 박수를 치시기 시작했습니다. 짝, 짝, 짝, 정확한 템포로 천천히 속도를 내시며 말이죠. 곧이어 아버님이 “잘 불렀는데 끝 소절에 콩나물 대가리가 몇 군데 틀렸어. 그게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닌데.” 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아버님 말씀에 천군만마를 얻은 듯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했습니다. 노래를 경청하시며 틀린 부분을 정확히 짚어 내시는 것 또한 놀랍고 기뻤습니다.
곧 아버님은 성급히 방으로 들어가시더니, 방 서랍에 한가득인 트로트 CD 속에서 이미자 앨범을 찾아 오디오를 켜셨습니다. 잠시 후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방안 곳곳을 채웠고,
계속해서 이미자의 수많은 노래가 밤늦게까지도 방안에서 새어 나왔습니다.

성공이었습니다.
다음날 저녁에는 어머님의 얼굴에 산뜻한 미소가 번져 있었고, 아버님 방에서는 이미자의 메들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일주일 동안은 트로트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들렸죠.
그때의 순간적인 판단과 용기가 있었기에 한기가 금세 온기로 변한 것입니다.


그 온기는 여전히 식지 않고 매일 같이 저희 가족을 감싸 주고 있습니다.
따뜻함과 애정을 나누는 가족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온기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