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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향으로 데려다주는
    어떤 마법들

    • 이명석(문화비평가)
  • 가끔 견딜 수 없이 그리워진다. 꿈꾸어온 일들이 맥없이 바스라지고, 가까운 사람들과 가시 돋친 말을 나누고, 내가 걸어온 길이 과연 맞는 걸까 의심스러울 때, 우리는 돌아가고 싶다. 처음 시작했던 곳으로. <은하철도 999>의 철이가 은하 너머로 날아갈 표를 얻었다면, 우리가 원하는 행선은 정반대다. 지금 어디에 있든 눈을 감으면 고향으로 데려다줄 마법을 원한다.
어디에나 있는 고향

‘홈시크(Homesick)’라는 오랜 병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에 갔던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긴 여정을 그리고 있다. 바그너의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저주로 인해 영원히 고향의 항구로 돌아가지 못하는 유령선을 노래한다. 올해 아카데미상에서 화제를 모은 영화 <미나리>는 낯선 땅에 정착하려고 애쓰는 한국계 이민자들의 삶을 그렸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이유는 누구든 고향을 떠난 상실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직업을 위해, 아이들의 학교를 위해, 혹은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우리 역시 이주해 왔다.
당신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살고 있다면 물리적 귀향은 큰 어려움이 아니다. 고속도로와 KTX와 촘촘한 항공노선은 전국 대부분을 당일에 다녀오게 한다. 하지만 ‘고향으로 가는 마법의 기차표’를 손에 쥔 우리는 고민한다. 도대체 나의 진정한 고향은 어디일까? 고향이란 쉽게 정의하면 ‘내가 태어난 곳’이다. 조금 넓히면 ‘내가 어린 날을 보냈고 많은 추억을 남긴 곳’이 될 수도 있다. 예전에는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일 가능성도 높았다. 그러나 이제는 혼란스럽다. 태어나 어른이 될 때까지 한 동네에서 지낸 사람을 찾기가 오히려 어렵다. 가령 그런 고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막상 돌아가면 내가 알던 그 모습이 아닐 경우가 많다. 10년이 멀다 하고 부수고 새로 지은 건물들 때문만도 아니다. 어린 시절 함께 지낸 친구도 이웃도 이미 멀리 떠나버린 경우가 많다. 고향이 수몰되어 완전히 사라진 사람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누구나 비슷한 상실감을 느낀다. 지방 소멸의 시대는 고향 소멸의 시대이기도 하다.
욕심을 조금 줄여볼까? 이웃은 아니더라도 가족이 단란하게 모여 따뜻한 한 끼를 나눌 정도면 좋겠다. 명절의 잔치상이 아니라도 좋다. 서로의 식성에 딱 맞는 음식을 앞에 두고, 마음의 앙금을 걷어내고 고된 삶을 위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앤 타일러의 소설 <홈시크 레스토랑>의 주인공은 그것이 인생의 소원이다. 갈등이 많은 성장기를 보낸 형제들을 자신의 식당에 불러 함께 밥 먹기를 갈구한다. 도심 여기저기 식당에 보이는 ‘엄마손’ ‘집밥’ 등의 간판도 그런 마음을 담은 것이리라. 동창들과 즐겨가던 학교 앞 떡볶이집, 가족들이 특별한 날에만 가던 패밀리 레스토랑, 복고풍의 인테리어를 한 식당에서 고향의 맛을 만날 수도 있겠다.

잠깐이 아니라 영원히 돌아가는 귀향

그러다 이런 마음을 품을 수도 있다. 아예 고향으로 내려가 살면 어떨까? 지난 6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귀농어·귀촌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귀촌 인구는 494,569명으로 전년대비 7.4% 증가했고, 가구 수로는 357,694가구로 통계조사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중 30대 이하가 48%에 육박해 역시 최대치였고, 1인 가구 비중도 74%를 넘었다. 혼자 사는 젊은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지방에서 새로운 고향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언택트, 비대면, 인구 저밀도 지역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졌고, 이러한 움직임은 집값 상승과 실직 등의 문제가 결합되며 점점 활발해질 것 같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런 귀농·귀촌 가구들이 당사자만이 아니라 지인과 고객들의 ‘새로운 고향’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1990년대에 귀농을 선택한 부부가 있다. 철마다 나오는 농산물을 도시의 동창들에게 판매했고, 보답의 의미로 여름이면 캠프를 열어 그 가족들을 초대했다. 동창의 아이들은 농약 대신 우렁이를 이용한 논을 체험하고, 갯벌에서 조개를 캐면서 마치 그곳을 고향처럼 여기게 되었다. 이제는 그 아이들이 새로운 아이들을 낳아 찾아오고 있으니, 그 농장은 새로운 대가족의 고향이 된 셈이다. 최근 귀농·귀촌한 이들도 생계를 위해 도시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직접 키운 유기농 농작물을 도시의 지인들 중심으로 판매하면서 작은 카페와 민박을 열어 그들이 찾아와 머물다 가게 한다. 뻔한 관광지가 아니라 시골의 작은 집을 찾아온 이들은 잠시나마 고향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낀다.
어떤 이들에겐 고향을 찾는 일이 숭고한 경험일 수도 있다. 렘브란트가 노년에 그린 <탕자의 귀향>이란 작품이 있다. 젊은 시절의 화가는 돈을 잘 벌고 또 잘 썼다. 서른 살 무렵엔 암스테르담의 홍등가에 있는 자기 모습을 그려 <매음굴의 탕자>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러나 화가는 아들, 딸, 아내를 줄줄이 먼저 보내고 빚과 소송으로 고통받는 쓸쓸한 말년을 맞는다. 그는 허영과 자만에 가득 찬 과거를 회고하며 고향으로 돌아가 용서받고 싶었던 것이다. 서정주의 시 <국화꽃에서>의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의 마음도 그와 닮았다.

고향을 만드는 다양한 방법들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의 만화가 오카노 유이치는 화목하지 못한 가정을 떠나 도쿄로 갔다. 하지만 직업 생활은 순탄치 못했고 이혼까지 하게 되어 고향 나가사키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있는 어머니와 살아가는데 그만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다. 그는 그 고된 상황을 유머가 깃든 만화로 그린다. 점점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가는 어머니는 어쩌면 자신의 고향을 찾아가는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꿈에 죽은 아버지가 돌아와 문간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다. 평생 너무 고생만 시켜 사과를 하러 왔다고. 세 가족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향을 찾은 것이다.
고향이 꼭 시골일 필요는 없다. 평생 도시에서 살아왔거나 도시가 주는 자유에 편안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홈타운이 꼭 태어난 곳이 아닐 수도 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파리에서 자신의 살롱을 만들고, 마티스, 피카소, 달리, 헤밍웨이들을 키워낸 거트루드 스타인은 말했다. “미국은 나의 시골이고, 파리는 나의 홈타운이다.”
자신의 홈타운을 직접 만들려는 사람들도 있다. 근교에 뜻 맞는 지인들끼리 모여 마을을 이루어 살 수도 있다. 명절에 보육 시설을 찾아가 그 아이들에게 고향집의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이도 있다. 시골 폐교를 고쳐 문화 시설로 만드는 일을 돕고 꾸준히 찾아가 정을 쌓을 수도 있다. <모비딕>의 작가 허먼 멜빌은 말했다. “삶이란 고향집을 향하는 여행이다.” 누군가의 고향은 아직 찾아가보지 못한 어떤 곳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