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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콕 홈캉스에서
    무착륙 비행까지,
    뉴노멀 휴가

    • 이명석(문화비평가)
  • 푸른 바다와 낯선 도시를 꿈꾸며 무작정 공항으로 달려가고픈 계절이다. 하지만 우리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 여름을 현명하게 맞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난해 차분히 ‘집콕’하며 휴식하는 회복의 휴가법에 눈을 떴다면, 올해는 대인 접촉을 줄이면서도 새로운 체험을 즐기는 뉴노멀의 휴가법을 실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집콕 휴가도 가지가지

지난 5월 말 잡코리아가 직장인 72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년 사이 10명 중 7명이 집콕 휴가를 경험했다. 여름휴가 계획도 집콕 홈캉스가 21.7%, 무계획이 26.8%에 달했다. 6월 초 티몬이 고객 6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도 집콕이나 휴가 연기를 택한 경우가 18%를 차지했다. 자유로운 여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집에서 조용히 쉬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집콕 휴가도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여름휴가 시즌을 준비하며 비행기 티켓 대신 새 가전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초대형 UHD 화면으로 OTT 드라마를 정주행하거나, ‘덕질’을 시작한 아이돌의 영상을 탐독하거나, 유튜브로 여행지의 풍광을 보며 대리만족하기 위함이다. 여기에 안마 의자, 마사지 기구 등을 장만해 딱딱해진 몸을 회복할 기회로 삼기도 한다. 온택트 강의를 통해 요가, 홈트레이닝, 악기 배우기 등을 시도하는 스쿨케이션도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집안에 머무르면서도 여행지에 온 느낌을 얻는 방법도 있다. 이국적인 식물을 주문해 방을 꾸미고 휴양지에 온 것 같은 옷차림으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거다. 지중해를 여행하는 듯한 크루즈 룩, 남태평양 느낌의 플라워 프린트, 미국 남부의 여름밤 같은 화이트 리넨 셔츠, ‘빨강머리 앤’에 나오는 밀짚모자…. 여기에 여행하고 싶은 지역의 음식을 주문해서 먹으면 더욱 분위기가 산다. 영화 ‘연인’을 보며 베트남 쌀국수 밀키트를 즐기고, ‘자산어보’를 보며 흑산도 홍어 요리를 주문해 먹는다.

온앤오프의 놀이 삼매경

가족이나 친구들과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게임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려는 사람도 많다. 지난해엔 ‘모여봐요 동물의 숲’, ‘짱구는 못말려: 나와 박사의 여름 방학’ 등 힐링 게임들이 휴가 기간에 특히 인기를 모았다. 너무 몰입도가 높은 모바일과 컴퓨터 게임 대신, 가까운 사람들과 느슨하게 보드 게임을 즐기는 경우도 많다. 최근 마피아 게임을 변형하거나 카드에 적힌 질문에 대답하도록 하는 심리 토크형 게임들이 마음속 스트레스를 풀어내며 사랑받고 있다. ‘펭귄 얼음 깨기’, ‘텀블링 몽키’ 등 복잡한 룰을 배울 필요가 없는 놀이형 보드 게임들도 코로나19 기간동안 이후 판매고가 급성장했다.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방구석 여행도 가능하다. ‘맵 크런치’ 구글맵 스트리트뷰에 기반해 세계 곳곳에 불시착하도록 하는 서비스다. 칠레 남쪽의 황량한 바닷가, 산토리니 섬의 새하얀 마을, 캐나다 산악 지역의 눈 쌓인 숲 등 어디에도 갈 수 있다. 국내의 지도 앱을 이용해 추억의 동네 찾기를 할 수도 있다. 유튜브 ‘방구석 동네 한바퀴’를 보면 로드뷰를 통해 추억의 거리를 방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먼 곳에 흩어져 사는 동창들이 같은 시간에 학교 주변을 돌아보며 추억의 떡볶이집에 대해 채팅할 수도 있다.
10년 전의 사진을 보여주는 서비스도 있는데,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머니를 기다리는 모습이 나와 눈물을 터뜨린 사람도 있다고 한다.

프라이빗 한 여행법의 진화

물론 집에만 머무르란 법은 없다. 슬슬 기지개를 켜고 있는 여행업계가 안전을 고려하면서도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제안을 내놓고 있다. 티몬이 조사한 여름휴가 선호지로는 독채형 펜션&풀빌라 48%, 해변 21%, 캠핑 18%, 그리고 도심 호캉스가 11%를 차지했다. 대인 접촉을 줄이는 프라이빗 한 공간을 선호하는 걸 알 수 있는데, 소위 ‘보복 소비’ 심리와 결합해 고급 숙소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프라이빗 풀빌라에서 푹 쉴 수도 있고, 프라이빗 요트를 이용해 해안의 절경을 감상하며 낚시를 한 뒤 해산물 만찬을 즐길 수도 있다.
지난 5월 발표한 숙박 플랫폼 ‘온다’의 숙박업 지표(OSI)에 따르면 글램핑, 캠핑, 카라반 부문이 지난해 대비 두 배 이상 성장했다. 직접 텐트와 취식 도구를 가지고 가는 캠핑, SUV 차종 등을 활용한 차박, 좀 더 전문적인 캠핑카, 이런 준비 없이 미리 차려진 대형 텐트를 활용하는 글램핑, 현지에 준비되어 있는 카라반 등 다양한 옵션이 우리를 기다린다. 오토 캠핑장 등을 예약하기 어렵거나 시끌벅적한 주변 분위기가 싫으면 가볍게 도시락을 싸서 차크닉을 떠날 수도 있다. 여러 지자체에서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들을 제안한다. 수만 그루 소나무 삼림 속에서 피톤치드를 즐기거나, 맨발로 황톳길을 밟으며 건강을 회복하거나, 수백 년 전 과거를 보러 가던 길을 걸으며 문화적 배움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도심의 호텔에 머무르면서 휴가를 즐기는 호캉스도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호텔 방은 크지 않더라도 호텔 내의 피트니스, 수영장, 뷔페 등 여러 시설을 쓰면서 휴식과 재미를 함께 추구했다. 하지만 호텔 내 시설의 사용도 제한되면서 안전한 방 자체에 좀 더 집중하는 경향이 생겼다. 고객들은 해외여행에 쓸 경비를 돌려 스위트 룸, 럭셔리 빌라, 하이엔드 호텔 등을 이용하고, 호텔 측에서도 인 룸 다이닝, 안마 의자, 의료 가전 등 프리미엄 한 서비스를 제안한다. 체크인 후 최대 30시간까지 투숙이 가능한 ‘스테이케이션 패키지’를 통해 방콕형 투숙자를 유혹하기도 하고, 안전한 물놀이를 위한 루프탑 수영장, 플로팅 요가, 시그니처 비치 백을 제공하며 시선을 끌기도 한다.

핸디캡이 만들어낸 뉴노멀 휴가

그래도 비행기에 올라타 떠나는 기분을 내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최근 ‘플레저 플라이트(Pleasure Flights)’라는 이름의 무착륙 국제 관광 비행이 새로운 여행 트렌드가 되고 있다. 승객들은 여행 가방을 싸고 공항 수속을 밟고 구름 위에서 세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코로나19를 벗어난 듯한 해방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들 서비스는 헬로 키티 테마의 비행기, 미쉐린 3스타의 식사 등으로 차별화를 꾀한다. 면세 쇼핑에 호텔 패키지까지 경험하면 정말 여행을 다녀오는 듯한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코로나19는 우리를 꼭꼭 가두어둔 채 몸과 마음을 괴롭힌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새로운 실험과 도전의 기회로 삼고 있다. 어쩔 수 없는 핸디캡 속에서 개발한 여행의 방법이, 어쩌면 나에게 딱 맞는 미래의 여행법이 될 수도 있다. 몸과 마음을 학대하는 과도한 스케줄, 번잡하고 뻔한 관광 명소, 자랑만을 위한 해외여행이 아니라 진정한 휴식, 회복, 배움을 위한 나만의 휴가법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