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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서남중여신심사센터 최성진 팀장

    프로야구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수집가의 방

    • 정임경
    • 사진 김범기
  • 이 많은 사인볼을 어떻게 다 모았을까. 경서남중여신심사센터 최성진 팀장이 10여 년에 걸쳐 모은 야구 선수 사인볼들에 대한 첫인상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안방 벽면 가득한 사인볼은 좋아하는 선수로, 감독으로 팀으로 경계를 나누고 있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프로야구팀 공도 눈에 들어왔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가 최성진 팀장 집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야구선수 사인볼이 가득한 집

삼미 슈퍼스타즈, MBC 청룡, 롯데 자이언츠…. 1982년 개막한 프로야구 원년 팀들의 공을 비롯해 지금은 한화 이글스, 두산 베어스로 이름을 바꾼 빙그레 이글스, OB 베어스 공도 눈에 띈다. 그 옆에는 박철순, 선동열, 이승엽, 류현진 등 내로라하는 야구선수들의 사인볼도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와” 최성진 팀장의 사인볼 컬렉션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최동원 선수 사인볼 이건 꼭 찍어야 해요.”라는 최성진 팀장의 얼굴은 자식 자랑에 신난 아버지 모습이다.
“10여 년 전 사회인 야구단 활동을 함께 하던 동료에게 이승엽 선수의 사인볼을 받았어요. 워낙 야구를 좋아하기도 했고,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는데, 500여 개나 되네요.(웃음)”
안방 벽면을 채우고 있는 사인볼은 일부일 뿐 더 많은 공이 집안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주로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를 비롯해 중고나라, 당근마켓에서 거래했고, 때로는 경기장에서 선수와 감독들에게 직접 사인을 받기도 했으며, 교환도 서슴지 않았다. 최성진 팀장의 야구 사랑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바야흐로 1982년 3월 27일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가 태동하던 그 날부터 시작됐다. 열 살 아이는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의 첫 경기를 목도했고, 어린 마음에도 패배한 삼성이 안쓰러웠는지 그날부터 팬을 자처하며 30여 년을 응원했다. 최성진 팀장의 최애 선수 또한 이승엽 선수다. 사회인 야구단에서 1번 타자로 활약했던 그의 등 번호가 36번인 것도 팬심이 엿보이는 부문이다.
비록 5년 전, 김성근 감독을 쫓아 한화이글스를 응원하고, 오늘도 막내아들과 한화이글스의 경기를 관람하러 고척구장에 가지만, 이승엽 선수의 사인볼을 수집하는 것은 여전히 그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이승엽 선수 사인볼이 맺어 준 인연

“이승엽 선수를 가장 좋아해요. 이승엽 선수가 1995년 데뷔했는데 그해 공을 비롯해 1996년, 1997년 등 연도별로 사인볼을 모으고 있고, 한 70여 개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현존하는 최고 선수인 만큼 가치도 높죠.”
이승엽 선수 사인볼이 있는 구역에는 야구 방망이를 든 모습의 카드도 있었다. 최성진 팀장에게 이승엽 선수의 사인볼이 더 소중하고 애틋한 데에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지인의 영향도 있다.
“2014년 즈음 중고나라에서 이승엽 선수 사인볼을 거래하며 알게 된 대구분인데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한 번의 거래 이후에도 자연스레 연락하며 지냈어요. 둘 다 이승엽 선수 사인볼을 수집한다는 공통점도 있고, 무엇보다 그분이 20여 년간 사인볼을 모아 오셨던 터라 사인볼 수집에 관해 많은 정보를 가르쳐주셨죠. 제가 가지고 있는 이승엽 선수 사인볼 중 많은 것이 이 분을 통해 모은 것이에요.”
얼굴을 마주한 적 없지만, 수년간 전화로, 메시지로 끊임없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공통의 관심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기에 다른 사람을 통해 들은 그의 사망 소식은 충격이었다. 가끔 연락해도 답이 없었던 이유가 심장마비라니 마음이 헛헛해졌다고. 이 소식 또한 또 다른 이와 거래하며 “당신이 기업은행에 다니는 사람이냐.” 며 생전에 지인이 최성진 팀장에 관해 이야기했다며 그의 소식을 전한 것이다. 그렇게 지인은 이승엽 선수의 사인볼과 함께 최성진 팀장에게 좋은 추억이자 아쉬운 인연으로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 세계 최연소 300홈런 달성기념 이승엽 사인볼
  • 삼미 슈퍼스타즈 투수 故 장명부 선수의 사인볼
프로 야구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컬렉션

“야구 역사가 39년이라고 했을 때 주로 30여 년 전 사인볼을 모으려고 해요. 옛것이 좋더라고요. 이들 중 삼미 슈퍼스타즈 투수이자 레전드인 故 장명부 선수의 사인볼이 가장 가치가 높아요. 이런 공은 보는 것도, 구하는 것도 어려워요.”라며 수십여 년 전의 공을 조심히 꺼내 보였다. 오랜 시간의 흔적이 보이는 공 아니 보물이다.
어디 그뿐이랴. 앞서 이야기한 레전드 최동원 선수, 박철순 선수의 사인볼부터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MBC 청룡의 이종도, 김재박 선수의 사인이 담긴 공, 1982년 OB 베어스 박철순, 윤동균 등의 선수 사인이 담긴 공 그리고 1983년 롯데 구단의 연습 볼, 1992년 롯데 자이언츠의 한국시리즈 우승 기념 자수 볼, 해태 타이거즈의 김응용 감독의 사인볼 등 수집한 공을 보고 있노라니,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류현진 선수가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 쿠바전 승리 투수라고 직접 쓴 공도 있어요!”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최성진 팀장이 내민 사인볼에는 정말 류현진 선수의 손글씨로 한국 야구의 위상을 세계에 알린 그 날의 영광이 기록되어 있었다.
애정하는 만큼 예전에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공을 닦고 또 닦았다. 밖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사인볼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예민한 마음이 이내 편안해졌다. 하나, 둘 자신만의 컬렉션을 채워가며 만끽하는 뿌듯함은 무언가 애정을 갖고 수집한 사람만이 아는 즐거움일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취향을 쫓는 것이 좋은 컬렉션

최성진 팀장의 수집은 사인볼이 처음이 아니다. 한때 우표도, 1960년대 10원짜리 동전도 모았다고. 어릴 적 신발 상자 한가득 모은 동전들은 그가 군대에 갔을 때 어머니가 은행에서 다 교환했다며, 잘 보존된 1960년대 10원 동전은 현재 8만 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며 웃지 못할 이야기도 전했다. 무엇이 이토록 옛것을 모으게 하는 것일까. “오래된 것들을 볼 때면 그 자체로도 반가운 일이지만, 그 시절의 추억까지도 소환해주니 더 좋아요. 프로야구 원년 팀의 사인볼을 볼 때면 1980년대, 1990년대 그 시절은 물론 그때의 저 또한 자연스레 떠오르거든요. 그래서 더 마음이 가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는 마틴 스콜세지의 감독의 말처럼 그 또한 지극히 개인적 취향을 쫓아 좋아하는 것, 관심 있는 것을 수집할 것을 권했다.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었을 때의 희열과 만족감은 상상 이상이라고. 그렇게 수집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온 최성진 팀장. 그리고 그의 컬렉션은 다시 최성진 팀장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500여 개의 사인볼이 있지만, 여전히 손에 넣고 싶은 공도 있다고. “1982년 개막 구요.”라는 최성진 팀장. 어김없이 오늘도 이베이를 들여다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