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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콕 시대,
    식물 집사들이 만드는
    새로운 시장

    • 이명석 (문화비평가)
  • 요즘 초록이 넘쳐난다. 봄이 되니 산과 들, 숲과 공원에서 꽃과 풀들이 싱그러움을 뽐내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그곳만이 아니다. SNS에는 잘 키운 반려식물들을 자랑하는 식물 집사들이 가득하고,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손님들의 장바구니에 씨앗, 모종, 화분을 집어넣기 위해 애쓰고 있다. 카페, 식당, 백화점에서는 식물이 없으면 인테리어가 안 되고, 인기 품종과 한정판 화분을 노리는 ‘식물러’들의 정보 전쟁이 뜨거운 시대가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소비가 움츠러드는 때, 화초를 향한 손길이 유독 바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화훼
화훼·원예시장의 지각 변동

동네 화원의 대목은 졸업식, 입학식처럼 꽃다발을 전하는 시즌이다. 그런데 이런 이벤트성 화훼시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직격탄을 맞았다. 여러 지자체에서 화훼농가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지만 예년에 비해 20% 줄어든 매출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집에서 가꾸는 화초 시장에서는 정반대의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지난해 롯데마트의 가드닝 상품 매출이 전년 대비 18.7%, 특히 화분은 45.6%나 증가했다고 한다. G마켓의 1~2월 반려식물 관련 매출 역시 전년에 비해 50% 정도 늘었다. 김해시산림조합의 나무시장은 지난해 총 7만여 주의 묘목을 판매했는데, 올해는 3월 12일에 이미 5만여 주의 묘목을 팔았다고 한다. 분명 화훼·원예시장에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케렌시아
케렌시아 and 플랜테리어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라는 노래에서 알 수 있듯이, 원예는 전통적으로 어르신 취미였다. 자식 농사 다 지어놓고 적적한 마음을 식물에 기대며, 농촌 공동체에서 성장한 추억을 되살리는 게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젊은 세대들이 해외여행을 통해 ‘스타일리시한 가드닝’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물론 이를 한국에 적용시키는 데는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고도로 도시화된 환경, 주거지를 자주 옮겨야 하는 실정, 혹한과 혹서를 거듭하는 기후, 황사와 미세먼지로 인한 낮은 대기질 등 정원 가꾸기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너무 강력했다. 그렇다면 아예 떠나자. 귀농을 통해 정원의 로망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지만, 보편적인 생활상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다 4~5년 전부터 새로운 형태의 식물 문화가 등장한다.
그 즈음 유행했던 케렌시아(Querencia)라는 용어는, 치열한 삶의 와중에 스스로를 회복시킬 작은 공간을 찾는 현대인의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기능을 제공하는 장소는 집안의 서재, 공원의 벤치 등이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카페들이 그 역할을 많이 했다. 특히 잘 가꾼 화초들로 아늑하게 꾸민 식물 카페들이 도심 속의 오아시스로 인기를 누리게 된다. 이런 카페들의 테마인 플랜트(Plant)와 인테리어(Interior)를 결합한 ‘#플랜테리어’가 SNS의 인기 태그가 되면서, 집안에서도 사랑스러운 화초를 키우며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하는 움직임이 커진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황사와 미세먼지가 극심해지자 공기 정화용 실내 식물에 대한 수요도 커졌다.
아레카 야자, 필로덴드론, 산세베리아 등 아열대의 관엽과 다육식물은 이런 기대들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식물군이다. 실내에서 비교적 키우기 쉽고, 성장이 뚜렷해 키우는 재미가 있고, 거기에 아름다운 수형을 가꾸고 다양한 품종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특히 잎이 찢어지거나 구멍이 나서 나오는 몬스테라는 ‘플랜테리어’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품종이 되었다. 몬스테라를 수채화로 그리는 일도 유행을 타서, 관련 노하우를 담은 유튜브 콘텐츠도 앞다투어 등장했다.

식물시장의 새로운 도약

이렇게 무르익어가던 실내 식물시장을 새로운 단계로 도약시킨 것은, 코로나19로 인한 집콕 생활이다. 여행도 외출도 만남도 할 수 없는 갑갑한 일상을 이어가던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집안이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잠시 숨을 쉬어갈까를 고민했고, SNS에서 급속히 늘어나는 식물 집사들을 보며 그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슷한 때에 부쩍 늘어난 홈트레이닝, 요가 등 집콕형 유튜브 콘텐츠의 배경에도 식물들이 대거 등장했고, 이사갈 때 처분하기 곤란했던 화분들이 당근마켓의 인기 품목이 되었다.
새로운 식물시장의 드라마틱한 번성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2020년 하나카드의 매출 데이터를 분석해 ‘코로나19가 가져온 소비 행태의 변화’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화원과 화초 분야의 매출 변화가 특이하다. 1~2월에는 전년도에 비해 8~10%가량 줄어들었는데, 3월부터 회복세로 돌아서더니 4~10월에는 4~30%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식물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의 증가는 빅데이터로도 확인할 수 있다.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이 발표한 ‘화훼 소비 트렌드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보면 화훼산업 및 꽃 관련 온라인 정보량은 2019년 396만여 건에서 2020년 437만여 건으로 10% 이상 증가했다.
해보니까 괜찮네. 하나둘 화분은 늘려가던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집안의 화초가 단순히 심미적인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매일 물을 주고 잎을 닦으며 성장하는 식물의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반려’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데, 반려동물보다 부담이 적어 식물을 택했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또한 ‘나만을 위한 소비’를 위해 화분을 조금씩 늘려가다가 뜻밖의 부가가치들을 발견하게도 된다.

화분 해보니까 괜찮네. 하나둘 화분은 늘려가던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집안의 화초가 단순히 심미적인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내 방안의 작은 화분

식물은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크기, 건강, 모양, 희귀성에 따라 그 가치가 사뭇 달라진다. 예전엔 ‘공기정화식물’이라고 적당히 넘어가던 화초도, 필로덴드론 안에서 미칸인지 도메스티쿰인지 셀로움인지에 따라 가격 차이가 생겨난다. 그리고 식물은 중고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손바닥 크기의 모종을 사서 몇 년 동안 잘 키워서 비싼 가격에 팔 수도 있고, 삽목이나 수경 재배로 분화를 해서 번식 시켜 팔 수도 있다. 마음의 안식을 위해 식물을 키우다가 아예 집안을 온실처럼 바꾸고 정성 들여 번식 시켜 분양하는 부업에 이른 사람들도 있다. 몇몇 인기 브랜드의 화분, 특히 리미티드 팟은 수집 가치가 있어 또 다른 시장을 만들고 있다. 가드닝 솔루션 앱, 가정용 식물재배기 등 이 시장에 뛰어드는 기업 차원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우리가 집콕을 벗어난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다시 화분을 내다 버리고 다른 즐거움을 향해 달려 나갈까? 아니다. 오히려 식물을 통해 얻은 즐거움을 더 넓게 키워나가려고 할 것이다. 주변의 공원, 가로수, 숲과 식물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초록색 지구와 건강한 생태계를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지 고민할 것이다. 우리는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를 통해 맞닥뜨린 시련을 통과하면서, 우리 삶이 어디에 기반해야 하는지 깨달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초록색은 과거였지만, 또한 미래여야 한다. 그 시작은 내 방안의 작은 화분에서부터 시작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