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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행은 돌고 돈다네,
    다시 제주

    • 글. 사진 이부원(여행작가)
  • 해외여행이 어려워진 요즘 다시 제주가 신혼여행지로 선택받고 있다니 세상은 참 돌고 도는 것 같다. 어디 신혼여행뿐인가. 여행에 대한 열망, 쉼에 대한 목마름으로 사람들은 제주로 향한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고 했던가. 삶과 여행이 공존하는 한 달 살기를 시작해보자.

서귀포 칼호텔 근처에 ‘허니문하우스’라는 바다 조망이 근사한 브런치 카페가 있다. 1980년대 제주 신혼여행 코스로 어느 대통령의 별장이었다더라 전하는 곳이다. 가보면 그 시절 신혼부부들의 기념사진도 볼 수 있는데, 해외여행이 어려워진 요즘 다시 제주가 신혼여행지로 선택받고 있다니 세상은 참 돌고 도는 것 같다. 그렇게 보면 2020년 벽두에 시작된 정체불명의 병이 해를 넘겨 지금까지 진행 중이지만, 이것도 지난 일로 여길 날이 올 것이다.
“어라? 이 무렵 찍은 사진은 왜 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 할 때가 올지 모른다. 과거에도 다른 몹쓸 병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극복해냈으니까. 중요한 건 그때까지 주어진 시간을 슬기롭게 보내는 것일 뿐.

한 번의 상처쯤이야 그래도 견딜 수 있고 운명이라 여기고 체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날이면 날마다 바늘로 콕콕 찔리는 것 같은 상태야 참을 길이 없다.
- 장 그르니에, 섬, 31p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며 공동주택에서 사는 도시 사람들의 층간소음 갈등은 더 심해졌다고 한다. 매일 바늘로 콕콕 찔림을 당하는 시간이 길어진 셈이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집, 집에서도 편치 못하다면 어떻게 쉬어야 할까.
쉼이 필요하다면, 그 쉼이 여행이라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가장 먼 거리로의 여행, 그 장소는 아마 지금 제주일 것이다. 트로트와 레트로풍이 재유행하고 1980년대 신혼여행지였던 제주가 코로나 시대의 허니문 장소가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을까?

제주 한 달 살기

여건이 허락된다면 3박 4일 여행보다 한 달 살기 정도의 긴 여행이 코로나로 인해 뾰족뾰족해진 심신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는 훌륭한 선택지일 것이다.
제주 한 달 살기라,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 풀리는 느낌이 드는 것은 기분 탓일까? 그럼 상상해보자. 제주에 내 집은 어디에 어떤 모습일지.
제주도는 크게 북쪽인 제주시와 남쪽인 서귀포시로 나뉘고, 또 성산일출봉이 있는 동쪽과 반대편으로 비양도와 협재해수욕장이 있는 서쪽으로 나뉜다. 그래서 제주여행을 검색하면 #제주동쪽코스, #제주서쪽맛집 이런 키워드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숙소는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시내보단 외곽의 조용한 독채 숙소를 얻어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것이 좋겠다. 아파트, 빌라 같은 공동주택 생활은 제주 아닌 도시에서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으니까.

제주에 내 집

3박 4일 여행, 일주일 여행, 그리고 두 번의 한 달 살기를 거쳐 운 좋게 2015년, 제주에 작은 집을 마련했다. 서귀포 남원읍 신흥리라는 곳으로 제주도 동남쪽에 위치한 한적한 마을이다. 주변은 대부분 귤과수 농가이고 도심에서 벗어난 조용한 동네이다. 언덕을 넘어 큰 길을 나가야 겨우 편의점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집 근처에도 게스트하우스, 카페, 상점, 식당이 생겨 아주 번화해진(?) 편이다.
몇 년 전 필자가 이사할 즈음이 제주 이민 유행의 정점이었지 않나 싶다. 이후로는 당시와 같은 제주 이민 열풍은 한풀 꺾였다. 하지만 한동안 조용해지나 싶다가 요즘 다시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에 목말라하는 여행자들의 제주러시가 시작된 듯하다.

언택트 시대 제주를 누리는 법

육지로부터 젊은 이주민들이 많아지면서 제주라는 섬 자체 분위기도 점점 젊어지는 중이다. 카페나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들도 젊디젊고, 그에 따라 가게도 세련되고 멋진 공간이 많다. 짧은 일정으로는 아무리 집중적으로 돌아봐도 이른바 ‘핫플레이스’ 몇 군데를 미처 돌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느긋한 한 달 정도 여행이라면 굳이 사람 많은 시간, 장소에 줄을 서가며 맛집과 카페 탐방에 골몰할 필요성이 줄어들 것이다. 그것보다 지금은 언택트 시대니까, 제주를 여행하는 방법도 언택트 해져야 할 테니까.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이 커플이 되어도 잘 지낸다. 마찬가지로 집에서 시간을 잘 보내야 밖에 나가서도 더 즐겁게 보낼 수 있다.
처음엔 필자도 날 때부터 도시 사람이라 주변에 진짜 ‘뭐가 없는’ 시골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 막막했는데, 의외로 집에서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약간의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일들이지만, 그럴수록 잡생각이 덜해지고 보람도 생기는 일이 많다. 제주 일상과 풍경, 이 삶 속의 풍경들이 한 달 살기를 마친 다음에도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 좋은 팁이 되길 바란다.

  • # 낚시
    도시에서 살 때 한 번도 안 해봤고 관심도 없던 것이 낚시였는데 제주에 와서 처음으로 낚시를 해보게 되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초보 낚시꾼인 필자도 고등어며 자리돔을 잡을 수 있었다. ‘낚시 배우기 참 쉽죠~(밥 로스 아저씨 말투)’ 잘 낚는 것은 둘째 치고, 여름밤엔 바닷가에 나가서(모기는 뜯기겠지만) 환하게 불 밝힌 한치잡이 배들과 낚시꾼들을 보는 일은 ‘제주 감성’ 그 자체이기도 하다.
  • # 나만의_인테리어
    제주도는 일 년 내내, 한겨울까지도 꽃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유채꽃은 말할 것도 없고 계절마다 동백이며 벚꽃, 수국, 핑크뮬리까지 한마디로 ‘꽃세상’이다. 일부러 꽃구경+인생샷을 남기기 위해 여행 오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 요즘 인기 카페 인테리어 트렌드 중 하나는 큰 통창을 내서 제주의 자연을 액자식으로 조망하는 게 포인트라고 하는데, 그런 센스를 살짝 집안으로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 # 텃밭 _가꾸기
    도시인들의 로망 가운데 하나가 나만의 텃밭을 일구어보는 거라고 한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한 달 살기를 한다면 텃밭 가꾸는 일도 좋은 추억과 경험이 될 것이다. 잘하고 못하고 누구도 점수를 매기지 않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텃밭에서 내가 준 것보다 더 많이 돌려주는 자연을 느낄 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이런 것이구나, 깨달을 수 있다.
  • # 홈카페
    장소에 구애받음 없이 집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의 하나는 홈카페다. 빵 한 조각에 막 내린 커피 한잔, 여기에 조금 센스 있는 플레이팅을 더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 # 감귤체험
    운이 좋게 마당이 있는 집에서 한 달 살기라면, 그 집 마당에 귤나무 한두 그루쯤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런 조건까진 갖추지 못하더라도 감귤 수확 체험농장들이 있으니 꼭 한번 경험해보길 바란다. 제주에서 1년 동안 귤꽃이 피고 귤이 자라고 수확하는 과정을 보면 농사짓는 분들의 노고에 저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도시에서 돈만 주면 손쉽게 먹거리를 살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 테니까.
  • # 언택트한_산책
    제주에 집에 있다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가볼 만한 곳이 어딘가요?”, “맛집 좀 추천해주세요?” 이 두 가지였다. 맛집은 입맛이 천차만별이라 조심스럽고, 가볼 만한 곳은 여행을 하는 계절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를 택하면 그곳이 어디든 제주는 멋진 풍경으로 화답한다. 신천목장의 귤피 말리는 풍경, 위미리의 동백정원, 봄철엔 녹산로, 그리고 왕벚꽃이 진 다음의 탐스러운 겹벚꽃…. 가볼 곳이 너무 많다. 그러니 제주는 긴 여행이 어울릴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