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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캠핑

    • 김고금평 머니투데이 문화부 차장
  • 사실 캠핑 붐은 이미 2000년대 후반에 먼저 일었다. 마니아적 취향에서 보편적 일상으로 넘어온 것도 이미 수년 전이다. 하지만 단 1년 전까지만 해도 캠핑의 인기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 캠핑이 아니어도 떠날 곳이 많았던 그때와는 전혀 다른 세상. 요즘, 캠핑의 풍경은 꽤 많이 달라졌다.
캠핑 붐

2000년대 초반, 한국의 야외 문화 활동은 대규모 록(재즈) 페스티벌이 주도했다. 인천, 지산, 안산, 가평 등 수도권 중심의 공기 좋고 경관 수려한 자연이 있는 곳에 24시간 음악이 대기하는 새로운 문화 콘텐츠에 수요가 급증했다. 많게는 하루에 10만 명까지 몰렸다. 이들이 그냥 올 리 만무했다. 아예 여행용 가방에 짐을 싣고 현지에 마련된 텐트 등 캠핑 도구를 빌려 3박 4일 근사한 여름휴가를 보냈다. 잠자리에서도 여전히 꺼지지 않은 라운지 음악과 때때로 거칠게 달려드는 모기는 기억을 채우는 캠핑의 덤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소위 ‘페스티벌 제너레이션’은 2010년대 들어 진화한 캠핑족의 일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들의 영향을 받고 생성된 캠핑 세대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도 우리나라 캠핑 붐의 시작을 2000년대 후반으로 본다. 2007년 정도부터 국내 아웃도어 상품들이 본격 진출하면서 야외 활동을 부추겼고 캠핑 도구나 시설 역시 ‘텐트’라는 한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제주 신라호텔이 2000년대 후반 ‘글램핑’(glamping, 고급스럽고 편리한 물건들을 갖춘 야영)을 시도하면서 캠핑이 고급스럽고 편하다는 인식을 제공했다.”며 “캠핑이 마니아적 취향에서 보편적 일상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몇 년 사이 획일화한 문화로 정체기를 겪은 캠핑은 요즘 코로나19로 되레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굳이 캠핑이 아니어도 떠날 곳이 많았던 그때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 해외든 국내든 어딜 가도 만나야 하는 ‘사람’에 대한 부담감을 최소화할 수 있는 환경은 이제 캠핑 아니고선 찾아보기 힘들다.
2019년만 하더라도 야외 활동 인구의 유행어는 ‘미피족’(미세먼지를 피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코피족’(코로나19를 피하는 사람들)이다.

잠재된 외출 본능을 자극하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되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자, 외출의 욕구를 캠핑으로 채우는 것이다. 캠핑은 가족 단위로 움직이는 최선의 놀이문화로 모르는 사람과의 대면 접촉에서 비교적 안전할 뿐 아니라, 오랫동안 집에만 머무는 무료함도 덜게 해주는 최적의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여기에 각종 매체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내는 캠핑 관련 콘텐츠들이 가뜩이나 지루하던 삶에 기름을 부으면서 잠재된 외출 본능을 자극했다. 가수 비가 차량에 텐트를 설치한 뒤 문어숙회, 석화 등 겨울 제철 요리로 캠핑 속 알짜배기를 드러낼 땐 군침을 삼키며 떠날 채비를 갖추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캠핑이 대세 문화로 떠오르는 사실은 각종 통계에서도 증명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9년 전국 캠핑카 등록 대수는 2만 5,000여 대로, 2011년에 비해 19배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캠핑 인구는 60만 명에서 400만 명으로 늘어났고 등록 캠핑장 수는 2017년 1,851개에서 1,900개로 49개(2.6%) 증가했다.
GKL사회공헌재단이 발표한 ‘2018 캠핑산업현황 통계조사’를 보면 2017년 2조 원이던 캠핑 산업 규모가 1년 새 2조 6,000억 원으로 32.1%나 증가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캠핑 관련 단체들의 조사에 따르면 캠핑 동반자로 가족이 61.6%로 가장 많았다. 숙박 형태로는 일반 텐트(77.8%), 카라반(8%), 특별한 선호 형태 없음(5.4%), 글램핑(4.6%) 순으로 나타났다. 캠핑 용품 구매도 크게 늘어났다. 롯데마트가 지난 6월 1일부터 7월 25일까지 전년 대비 캠핑 용품 매출을 살펴보니 의자와 테이블 등을 포함한 ‘캠핑 퍼니처’가 103.7%, 침낭·매트리스 등을 포함한 ‘캠핑 침구’가 37.6%, ‘텐트’가 55.4%, ‘캠핑 취사’가 75.5% 성장했다.
특히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전국 유명 해변과 휴양림, 캠핑장 등으로 떠나는 캠핑족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5월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가 사용실적을 분석했더니 이 기간 캠핑장 이용 경험이 있는 소비자는 1만 9,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000명에 비해 209% 증가했다.

싱글 캠핑족이 대세

캠핑의 더 완성된 업그레이드 버전은 ‘차박’이다. 차량에 텐트를 연결하고 잠을 자는 ‘차박’은 코로나19에서 완전 해방을 꿈꾸는 싱글족과 SUV 마케팅을 강화하려는 자동차 업체들의 니즈가 맞아떨어지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차박은 무엇보다 ‘비대면’을 강조하는 시대에 최적화한 캠핑이라는 점에서 여행의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떠오르고 있다.
예전에는 캠핑이 삼삼오오 모여 모닥불을 피우며 즐기는 문화로 곧잘 인식됐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최대한 ‘사람’과의 교류를 줄이고 자신의 내면과 교류하거나 자연을 감상하는 태도로 바뀌는 것이다. 캠핑 관계자들은 “사람 간의 접촉을 줄여 혼자 자연을 즐기러 오는 싱글 캠핑족이 요즘 대세”라며 “코로나19로 인해 달라진 여행 문화의 키워드는 고독”이라고 전했다.
30대 회사원인 A씨도 솔로 ‘차박’ 캠핑 마니아다. 그는 물소리를 들으며 낮에는 책을 읽고 밤엔 (차에서) 영화를 감상하며 코로나19 시대에 나름의 자유를 느낀다고 했다.
캠핑이 남자의 전유물이라는 선입견도 무너지는 모양새다. 안전해진 캠핑장과 설치가 간편한 오토 캠핑이라는 장점이 솔로 여성들을 유인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하듯, 연말을 앞두고 전국 주요 오토 캠핑장은 예약률이 80%가 넘을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오토 캠핑장의 한 관계자는 “안전을 고려한 가족 중심 캠핑족의 방문이 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캠핑장이라고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다. 올 여름 강원도 홍천의 야외 캠핑장에서 가까운 거리를 두고 캠핑한 6명이 집단으로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례나 최근 캠핑용으로 개조한 버스에서 ‘차박’을 하던 50대 남성 4명이 가스를 흡입해 숨지거나 다치는 참변을 당한 사례에서 보듯 예상치 못한 변수와 마주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또한 조금 더 큰 자유와 문화를 누리기 위해 더 철저히 방역 수칙을 지켜야 하는 건 캠핑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